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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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착기

180625 | IELTS 시작, 호주 여행 제안

치치댁 2023. 8. 28. 13:20

(NZ+173) 월요일. 비

CAE 할 때 반에 워낙 원어민같이 영어를 잘하는 애들이 많았어서 그런지 새로 시작한 IELTS 반은 사람들이 다 어버버 하는 느낌이다. 내가 영어를 잘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 절대 아니고, 다들 나랑 비슷한 수준으로 말하는데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랑 대화하던 게 더 편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쨌건 학원에 오래 있으니까 친구 사귀기는 점점 쉬워지는 것 같다. 옆에 앉은 사람한텐 이제 막 말 걸 수 있다. 장소에 익숙해진다는 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이번 반에는 콜롬비아랑 타히티, 한국, 일본, 러시아 국적도 있다. 10일 밖에 함께 할 시간이 없지만 있는 동안 잘 지내야지.

오전반 선생님인 Katie는 스윗하시다. 키위 악센트가 있지만 되게 조곤조곤하고 귀엽고 숏컷이 잘 어울리신다. 오후 선생님은 또다시 Matt인데 2주 지나서 만나니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선생님들 공간이 유리로 구분되어 있는데 눈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복도에서 만나면 나한테 말도 많이 시킨다. 오늘 물어보니 Kai랑 Helen은 main campus로 이동했다고 한다.

 

집에 와선 Yukino랑 일상 캐치업을 하고, 못다 한 빨래를 돌리고, 꼬질해진 패딩도 손빨래하고, 숙제 좀 하다가 볶음밥을 만드니 하루가 끝났다. 여행은 좋았는데 다녀오니 집안일이 산더미네... 사실 많다기보다 익숙하지 않아서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만.

남섬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엄마한테서 전에 뉴질랜드 여행을 같이 했던 엄마 친구 부부와 함께 7월에 호주에 가기로 했다고 나도 조인하면 어떠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 멤버들과 여행했을 때 좋기도 했고 2주 여행이라 꽤 길기도 한 데다가 호주는 초등학생 때 가봐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아서 다시 가보고 싶기도 했다. 뉴질랜드랑도 비교적 가깝고 엄마 못 본 지도 오래돼서 여행에 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카페가 마음에 걸렸다. 주말에만 일을 하고 있으니 단순하게 계산을 하면 4일 빠지는 거지만 결국 생각해 보면 2주를 빠지는 거고, 얼마 전에도 시험이다 남섬 간다 하면서 2주 동안 하루만 나갔어서 이번에 또 여행 간다고 얘기하면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 사장님께 말씀드렸고 수요일까지 답을 준다고 하셨는데 오늘 연락이 왔다.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직원 형평성도 그렇고 운영상에도 문제가 있어서 여행을 가면 다른 직원을 구해야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사장님 이런 말씀하시는 거 되게 스트레스받아 하시던데 진짜 생각 많이 하고 연락하셨을 것 같고, 나도 내 입장이 있지만 카페 입장도 너무 이해가 가서 알겠다고 잘 예의 갖춰서 답장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경험도 없는데 일하게 해 주시고, 일도 어버버거리고 못하는데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좋아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은인 같은 일자리였다. 공부에 지장 없이 일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 이런저런 새로운 것들도 배우고, 좌절도 했다가 또 익숙해지기도 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또 재밌기도 했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그 끝을 선택할 땐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뉴질랜드 오고 난 후 더더욱 느끼는 건 인생은 정말 선택의 연속이고 대개는 그 선택에서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선택한 삶을 살기 전까지 어떤 게 최선일지 알기도 어렵고 그냥 마음이 더 기우는 쪽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는 게 방법인 것 같다. 주말에 사장님한테 말씀드리면서 "어차피 호주 가게 될 줄 알았으면 남섬을 괜히 다녀왔나 봐요."라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런 소릴 했을까 새삼 놀랐다. 왜냐면 그 여행은 정말 적당했고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남섬 여행으로 딱 알맞은 시기에 딱 알맞은 만큼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었고 충전됐는데! 비록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일이 아닌 여행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일지, 너무 단기적으로 생각한 건 아닐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지만 뉴질랜드에 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선택했을 때 크게 후회한 적은 없으니 또 이런 선택들이 앞으로의 날들을 어디로 이끌지 걱정이 아닌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내보려 한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게 묘미고, 그래서 가끔 고꾸라졌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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