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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NZ+290) 토요일. 맑음 어제 늦게 들어와서 두 시간 반쯤 자고 일어나서 도시락 싸고 주섬주섬 챙겨서 페리 터미널에 갔다. 조애나랑 Rangitoto 가서 트레킹을 하는 날인데 날씨가 끝내줬다. 요새 계속 추웠는데 오늘은 햇빛 쨍쨍에 얇은 티 한 겹만 입으면 될 정도로 갑자기 여름이 됐다. 다음 주 월요일에 Labour day라 긴 연휴라서 사람들이 시티 밖으로 많이 빠졌는지 아침에 걸어가는데 차도 사람도 없었다. 페리를 타고 랑기토토 섬에 도착했다. 시티를 벗어나니 역시 좋았다. 날씨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여유롭게 걸으려고 일부러 일찍 간 거라 트랙으로 표시된 데는 최대한 다 가볼 수 있게 돌았다. 경사는 거의 없어서 편했는데 화산지형으로 인한 까만 돌이 사방에 있어서 표면이 고르지는 않았다. 트..
마리안 호수 트랙은 흔들 다리를 통해 에메랄드빛 Hollyford River를 건너며 시작됩니다. 트랙의 초반 10분을 걸어가면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인 Viewing Gantry가 나오는데, 난간까지 가는 트랙은 아주 예쁘고 걷기 쉽게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루트번 초반부와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폭포가 아주 강력해서 북섬의 후카 폭포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물론 후카 폭포가 규모나 물살이나 훨씬 크고 강하지만요. 투명한 물살이 하얗게 부서지며 거품처럼 되는 모습이 너무 예뻤습니다. 계속 변화하며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도요. 폭포 파도 윤슬 물빛 다 좋아서 이쯤 되면 전생에 물이랑 뭐가 있었나 싶지만 현생은 수영도 못합니다. 그저 좋아할 뿐.. 폭포 전망대를 지나면 지금까지의 쉽고 예쁜 길..
북섬에서 하는 첫 그레이트 워크인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뉴질랜드에 놀러 온 친구들 세 명과 쨈과 함께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아침을 해 먹고 여섯 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통가리로 트레킹은 시작점과 끝 지점이 달라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모든 인원이 셔틀버스를 타기엔 비용이 상당하므로 머리를 좀 썼습니다. 걸음이 빠른 쨈이 우리를 Mangatepopo 주차장에 내려주고, 쨈만 혼자 National Park Village에 다시 가서 주차한 후 셔틀을 타고 오기로요. 쨈은 산을 내려갈 때도 혼자 앞질러 내려가서 셔틀을 타고 주차되어 있는 마을까지 이동한 후, 다시 차를 가지고 우리를 태우러 와야 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원래는 Mangatepopo에서 차로 6km 더 진입해야 트..
마지막날은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어제 워든이 이 아름다운 숲은 엄청나게 내리는 비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비가 오면 그걸 기쁘게 포용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비가 내리네요.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아주 불청객같이 눈치 없이 터진 생리에 비까지 맞아 점점 축축해지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무릎이 완전히 회복이 안 됐고요... 역시 모든 게 좋기만 한 트레킹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인생이란. 비 오고 안개가 껴서 우중충한 와중에도 Earland Falls는 멋있었습니다. 압도하는 규모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물안개가 장대했습니다. 마지막날도 키써밋을 가기 위해 샛길로 빠지는 코스가 있는데, 다들 물에 젖은 생쥐가 돼서 와들와들 거리는 상태에다가 부모님께 말씀드린 픽..
어제 일찍 잤는데도 요새 계속 밤에 수십 번씩 깨서 엄청 피곤했습니다. 아침에 키아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보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날둘째 날 트랙은 폭포와 강과 호수와 산이 계속 약간씩 풍경을 바꿔가며 등장했습니다. 윤슬이 가득한 호수에서 시작된 물이 굽이굽이 강이 되어 흘러가는 게 예뻤습니다. 어젯밤 살짝 덮인 눈으로 설산이 햇빛에 하얗게 빛났습니다. 하이라이트인 둘째 날에 날씨가 정말 좋아서 감사하게도 가장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다가 Harris Saddle Shelter에서 따로 빠져서 Conical Hill에 올라가는 트랙이 있어서 쉘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다녀왔습니다. 돌산인데 경사진 부분이 많은데다 바위 위로 살얼음이 껴서 미끄러웠습니다. 어제 등산화 오른쪽 밑창에 떨어져서 마찰이 없어..
피오르드랜드 쪽이 워낙 다우지여서 일기 예보가 3일 내내 흐리고 비라고 하길래 걱정했는데 시작 포인트에 도착할 때쯤 되니 해가 나면서 풍경이 너무 예뻤습니다. 눈 덮인 산과 흘러내리는 폭포, 차로 시작점까지 들어가는 숲길이 황홀했습니다. 쨈이 본인이 해본 여러 개의 트랙 중 단연 베스트로 뽑기도 했고 그에 상응하는 풍경이 시작도 전부터 펼쳐져서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생각해 보니 여태껏 트레킹 가면서 기대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루트번 트랙이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날은 거의 숲길이고 길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쨈이 루트번 트랙을 좋아하는 이유가 쉬우면서도 풍경이 계속 변하고 끊임없이 멋진 장면이 나와서 라고 했는데 확실히 길이 편안했습니다. 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예..
마지막날은 가벼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아주 쉬운 길을 걷는 일정입니다. 대신 18km로 가장 긴 구간이라 6시간이 걸린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보다도 더 오래 걸리지만요.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는데 뭔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멜로디가 들리길래 옆방에서 알람이 울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와보니 새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덤플링 헛에서 들은 새소리는 굉장히 특이하고 예뻤습니다. 트랙을 걸으며 같은 종으로 생각되는 새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음색은 비슷한데 멜로디는 다 달랐거든요. 저는 마음속으로 그 새들을 '컴퓨터 기계음 새'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눈에 보이진 않아서 어떻게 생긴 친구들인지 궁금했습니다. 7시에 출발했는데 오늘은 두 시간 정도 지나니 발이 박살 나는 느..
가장 힘들고 가장 멋있었던 셋째 날. 맥키넌 패스(Mackinnon Pass)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일정이라 지도를 봤을 때 고도 상승이 심해 보이고 걷는 시간도 길어서 시작 전부터 가장 걱정되는 날이었습니다. 다음 헛인 덤플링 헛(Dumpling Hut)까지만 해도 여섯 시간 반이 걸리고, 폭포를 보려면 추가로 한 시간 반을 다녀와야 합니다. 공식적인 일정만 여덟 시간인 셈인데, 실제로는 열 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무릎이랑 발이 다 너덜너덜해졌습니다. 5:30에 새벽같이 일어나 7시에 출발해서 덤플링 헛에는 다섯 시 반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그레이트워크라 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굽이굽이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맥키넌 패스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이제 막 출발해서 체력도 가장 좋은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