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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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착기

180316 | 캠브리지 FCE 시험, 뒤풀이, Jeff랑 대화

치치댁 2023. 7. 5. 11:56

(NZ+72) 금요일. 흐림

  • FCE test
  • Bungalow 8
  • Elliott Stables
  • Jeff랑 집 앞 대화

오늘은 9시부터 FCE test를 봤다. Reading은 Use of English 파트가 너무 어려웠고 지문도 어려워서 시간 모자라서 다 못 풀었다. Writing은 Essay에서 시간을 다 보내다가 두 번째 파트는 엄청 빨리 대충밖에 못 적어 냈다. Listening은 시험장이 커서 그런지 소리가 울리는 데다 속도도 빨라서 Part 1이 듣던 중 어려웠다.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모의시험 본 것들이랑 비교해도 난이도가 높은 편인 것 같고 총체적 난국이어서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ㅜㅜ

어쨌든 시험이 끝났다! 학원에 들러서 Kai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선물을 전달했다. Helen은 이미 퇴근해서 Kai한테 전달을 부탁했다. 그리고 반 친구들과는 Bungalow8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다 같이 수고했다고 축하했다. 선선한 날씨에 맥주 마시면서 chill out 제대로인 느낌..! 무엇보다도 반 전체가 다 함께여서 좋았다. Sayaka가 공책을 돌리면서 편지를 써달라고 했는데 나랑 Jean도 편지 받고 싶어서 같이 공책을 돌렸다. 다들 엄청 빼곡하게 정성껏 편지를 써줬다!

자리를 옮겨 Elliotte Stables에 가서 저녁을 먹고 Jean 생일파티를 간단하게 했다. 다시 학원 쪽 근처 술집에 가서 더 시간을 보냈는데 거기는 당구도 다트도 무료로 할 수 있어서 당구 처음 쳐봤다! 배 위치를 짐작해서 침몰시키는 보드게임도 해 봤는데 이것도 처음 해 보는 게임이었다. 나오기 직전에 다트도 하고 잘 놀았다. 커플인 사람들은 다들 파트너를 초대해서 새로운 얼굴이랑 이전에 봤던 얼굴들도 다시 볼 수 있었다.

오늘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져서, 당구 치면서 Suzu한테 지금 꿈꾸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피곤한 건 아니었는데 9시도 안 됐을 때 체감 12시인 느낌.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런가 보다. 시간이 늦어서 하나둘씩 떠나면서 앞으로 잘 지내고 또 보자고 포옹을 했는데 그 순간까지도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다. 다음주에 학원에서 만날 것만 같은데 정작 진짜로 다음주가 돼서 실감이 나면 기분 이상하겠지... 이제 다들 친해져서 한국에서처럼 미친놈같이 웃고 장난칠 수 있게 됐는데. 이 친구들을 안 만났으면 오클랜드에서의 생활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 된다. 다들 성격도 좋고 적당히 또라이같고 배려심 깊어서 좋았다. 계속 연락할 것 처럼 얘기하지만 헤어지면 지금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아서 아쉽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머리로 안다고 해도 헤어짐의 순간은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Jeff랑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이 오다가 집 앞에서 한참 얘기를 나눴는데 10주 동안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돼서 좋은 의미로 놀라웠다. 사실 학원에서는 개인적으로 깊게 대화할 일이 많이 없는데 오늘 나눴던 대화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Jeff는 대학 휴학하고 워홀 온건데 학원을 아주 성실하게 나온 건 아닌데다 노는 거 좋아하고 겉보기엔 애같은 모습이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잘 찾아 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얘기해 보니 영어공부랑 여기서 지내면서 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 관련해서 나는 학원에 의존하는 타입이라면 Jeff는 일이랑 학원, 매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각각 생각하면서 최대한 똑똑하게 모든 걸 활용하는 스타일. 뉴질랜드 와서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영어를 쓰는지, 남은 기간은 어떻게 지낼건지에 대한 계획을 말하는데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 생각을 똑부러지게 정립할 수 있다는 게 멋있었다. 나는 지금의 모습만 보고 그 친구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이런 모습이기까지 진짜 힘들었던 시기도 있고 그걸 버텨내서 얻어진 지금이라는 걸 알게된 것도 인상 깊었고, 얘기 듣는 내내 '나 여기서 뭐하는거지? 너무 긴장감 없이 안일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해오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있고 즐기고 싶은 보상심리도 있어서 뉴질랜드에서 이루고 달성해야 될 게 분명히 있는데도 재밌고 즐겁고 릴랙스하게 지내면서 아직 괜찮다고 자위하고 있었는데... 이런 삶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뭔가 뒤통수 얻어맞은 느낌. 영어공부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얘기하다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서 오랜만에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집에 와서 오늘 하루를 적으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준비해오던 것의 발휘, 익숙한 사람들과의 헤어짐, 새벽 대화까지 완벽한 한 텀의 마무리네... 다음 텀을 시작하면서는 어떤 마음으로 할지, 학원 말고도 다른 시간은 어떻게 살지, 뭐가 나한테 제일 좋은 방법의 삶일지 좀 더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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