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180617-18 | 뉴질랜드 남섬 여행 네 다섯째 날 (Copland Track) 본문

뉴질랜드 여행/트레킹

180617-18 | 뉴질랜드 남섬 여행 네 다섯째 날 (Copland Track)

치치댁 2023. 8. 24. 13:06

(NZ+166) 일요일-월요일. 맑음
남섬 여행 네 다섯째 날

남섬에서 첫 트레킹으로 7시간 코스인 Copland track에 다녀왔다. 일찍 출발했으면 좋았을 텐데 출발 자체를 9시 반쯤 했고, 트레킹 시작하고 두 시간 동안 걸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Car park에서 출발해서 다시 Car park에 도착. 시작할 때 표지판을 못 보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두 시간을 걸어 제자리로 돌아온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코스 시작도 전부터 냇가를 건너야 돼서 발 안 젖으려고 등산화랑 양말 다 벗고 발 시리게 건넜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제 계속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해서 곳곳에 생긴 웅덩이와 진흙탕을 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어서 처음에 신발 벗었던 게 무색해졌다.

 

처음에 헤맨 바람에 결국 코스 시작을 12시부터 하게 된 것과 다름없는데 7시간 코스라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고 싶어서 중간에 무리하게 빨리 올라갔다. 하지만 겨울이라 5시 반이면 해가 지기 때문에 결국 올라가는 중간에 해가 떨어졌고 남은 길은 플래시를 켜고 가야 했다. Jae는 시간이 늦어지니 "밥을 해 먹고 올라갈까?"라고 했는데 나는 해 지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산에서 (여긴 산짐승이나 뱀이 없어서 위험한 건 없지만) 시간을 더 지체하는 게 불안하기도 했고,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무조건 빨리 Hut에 도착해서 잠은 꼭 거기서 자고 싶어서 일단 올라가자고 했다. 여기는 트랙 중간에 화살표만 띄엄띄엄 붙어있고, 어디까지 몇 km 이런 표지판이 자주 없어서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할지 알 수도 없었다. Jae는 트래킹도 많이 해 보고 산 올라가다가 밖에서 자본 적도 있어서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불빛이 하나도 없는 대자연에서 전전긍긍해했다. 해 진 상태로 한 시간 반쯤 더 올라가서 Welcome Flat Hut 2 min 사인을 봤을 땐 거의 울 뻔했다. 일곱 시쯤 도착했으니 거의 9시간을 걸은 셈이다.

휴... 어쨌든 무사히 잘 도착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다리 아파 죽으려고 하고 그 와중에 Jae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다 했다. 밥 먹고 근처에 핫풀이 있대서 나가 봤는데 여기는 핫풀이 스파 같은 게 아니고 진흙탕 천연 온천을 말하는 거였다. 수영복을 챙겨 온 것도 아니어서 종아리까지만 담갔는데, 여기까지 와서 들어가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결국 내복 입고 입수했다... 뉴질랜드 오니까 이런 것에 쿨해지는 것 같다. 바다 들어갔다 나와서 씻지도 않고 잘 돌아다니고, 진흙 온천도 한국이었으면 안 들어갔을 텐데 여기서는 뒷 일 생각 안 하고 일단 들어가고... 근데 핫풀이 어제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온천수 흘러 들어오는 부분은 데일 정도로 뜨거운데 찬물이랑 섞여서 딱 좋게 미지근했고, 뉴질랜드 와서 제일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목욕을 못 하는 거였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온천 같은 곳에 들어가 봤다. 우리가 거의 제일 늦게 숙소에 도착한 데다 밥까지 해 먹고 나오니까 핫풀에 한 명도 없어서 전세 낸 것 같았다. 플래시를 안 켜면 주변이 온통 새까만데 어둠 속에서 산 실루엣만 보이고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려서 정말 자연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확 들었다. 거기에 중간엔 보슬비도 내려서 비 맞으면서 온천욕을 했다. 온천에 들어가니 근육 아프던 게 확실히 많이 풀려서 신기했다.

숙소는 2층에 방이 있었는데 Fire place가 1층에 있어서 거기가 더 따뜻하길래 매트리스를 가져와서 침낭을 깔고 1층에서 잤다. 그래서 아침에 사람들이 밥 해 먹으러 내려오는 소리에 깼다. 다섯 시 반부터 내려오던데 부지런도 하여라... 준비하면서 커피도 마시고 밥 해 먹고 나가서 별도 잠깐 봤다. 어젯밤에는 날이 흐려서 별이 거의 안 보였는데 새벽에 보니까 하늘에 별이 가득 차 있었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이 이런 밤하늘에서 나온 거구나 싶었다.

날이 밝아질 때쯤 나와서 어제저녁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못 본 주변 풍경을 보고 출발했다. Hut은 눈 덮인 산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아침 하늘의 연하디 연한 하늘색과 산에 쌓인 흰 눈이 맞닿는 부분이 예뻤다. 그런데 핫풀의 상태를 햇빛 아래서 봤으면 못 들어갔을 것 같다...ㅋㅋ 어제 원효대사 해골물처럼 들어가서 다행이었네.

 

 

어제 헤매면서 올라오는 것도 9시간 걸렸으니까 오늘 내려가는 건 적혀있는 대로 7시간이면 되겠다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핫풀 덕분에 근육통은 전혀 없었지만 무릎이 좀 안 좋아졌고 발에도 물집이 생겨서 엄청 천천히 내려오게 됐다. 뒤로 갈수록 발도 등산화에 끼여서 새끼발가락 부분 엄청 아파지고, 무릎은 다 내려와 갈 때쯤 양 쪽 다 나가서 마지막엔 진짜 느리게 걸었다. 다 내려오고 난 후에 시간을 봤더니 9시간 지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아무리 가도 끝나지가 않았다. 똑같은 곳을 무한으로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냥 속도가 느려서 그런 거였다. 어제 산장 도착해서는 "안 찡찡거리네?" 소리 들었는데 오늘은 막 돌길 싫다 그러고 언제 끝나냐고 투덜대면서 내려왔다. 무릎 고장 나서 단차 심한 데는 내려가지도 못해서 계속 도움 받고. 그 와중에 내 짐만 엄청 가벼워서 찡찡대기도 애매했다. 골격 크고 씩씩한 서양 여자애들 둘이 자기 몸통만 한 백팩 메고 엄청 빨리 걸어내려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몸 아픈 것과는 별개로 오늘은 날씨가 진짜 좋아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멋있었다. 산맥도, 강물 색도, 어제 비 와서 햇빛에 반짝이는 이슬도. 뭐든 좋은 걸 보고 얻으려면 고생이 필요한가 보다. 근데 내 무릎은 어떡하지... 움직이지도 못하겠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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