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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루트번 트랙 둘째날 | Routeburn Track, Fiordland 본문
어제 일찍 잤는데도 요새 계속 밤에 수십 번씩 깨서 엄청 피곤했습니다. 아침에 키아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보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날둘째 날 트랙은 폭포와 강과 호수와 산이 계속 약간씩 풍경을 바꿔가며 등장했습니다. 윤슬이 가득한 호수에서 시작된 물이 굽이굽이 강이 되어 흘러가는 게 예뻤습니다. 어젯밤 살짝 덮인 눈으로 설산이 햇빛에 하얗게 빛났습니다. 하이라이트인 둘째 날에 날씨가 정말 좋아서 감사하게도 가장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다가 Harris Saddle Shelter에서 따로 빠져서 Conical Hill에 올라가는 트랙이 있어서 쉘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다녀왔습니다. 돌산인데 경사진 부분이 많은데다 바위 위로 살얼음이 껴서 미끄러웠습니다. 어제 등산화 오른쪽 밑창에 떨어져서 마찰이 없어서 더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으로 둘러싸인 눈 덮인 산과 강, 저 멀리 Tasman Sea까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고도가 높아서 그에 맞는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작으면서도 기하학적으로 생긴 식물들이 오밀조밀 있어서 누군가 예쁘게 만들어놓은 미니어처 정원을 훔쳐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미끄러운 길을 다시 내려오면서 슬슬 발목부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쉘터에서 Lake Mackenzie Hut까지 가는 길은 날이 점점 흐려지기도 했고 해가 떠 있는 방향 때문에 주변의 산이 선명하게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양한 모양의 식물들을 관찰하면서 가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헛이 보이기 시작하면서가 오히려 고역이었습니다. 저 멀리 헛이 눈 앞에 보이는데도 산을 빙 둘러 내려가야 해서 아무리 아무리 걸어도 도착하게가 안 되더군요.... 둘째 날 헛은 호수 앞에 있었는데, 내려가면서 보이는 호수에 마치 잉크가 스며들고 있는 것 같은 모양으로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흰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을 거쳐 짙은 초록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인데 날이 흐리고 어두운데도 경이로운 모습이었는데 햇빛이 쨍쨍할 때 보면 엄청나게 예뻤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산장 워든은 뉴질랜드 토종 새 보호에 엄청난 열정을 지닌 분이셔서 토크 때 어제처럼 안전수칙과 일기예보 등 기본적인 것들도 얘기를 했지만 대부분이 자연 보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처음 온 백인인 쿡 선장의 기록에 의하면 피오르드랜드의 아침은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가 멀 것 같은 정도였다고 하는데(당시의 새 소리를 deafning이라고 묘사했다 합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고요하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사람이 이주하면서 급속도로 자연이 망가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현지에 없던 동물들을 데려오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뉴질랜드는 아주 특이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어서 무성한 삼림에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다양한 새들이 살아왔는데 사람에 의해 들어오거나 소개된 쥐, 포썸, 담비가 빠르게 번식하면서 대부분의 새들이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DOC에서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예산 문제와 관리 구역이 워낙 넓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서 이 헛에서 따로 기부를 받아 주변에 덫을 설치해 천적 관리를 하고 있대서 저희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탰습니다.
루트번 트랙 둘째날을 더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치치댁 유튜브 채널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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