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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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트레킹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 Tongariro Alpine Crossing

치치댁 2023. 2. 22. 09:33

북섬에서 하는 첫 그레이트 워크인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

뉴질랜드에 놀러 온 친구들 세 명과 쨈과 함께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부지런하게 아침을 해 먹고 여섯 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통가리로 트레킹은 시작점과 끝 지점이 달라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모든 인원이 셔틀버스를 타기엔 비용이 상당하므로 머리를 좀 썼습니다. 걸음이 빠른 쨈이 우리를 Mangatepopo 주차장에 내려주고, 쨈만 혼자 National Park Village에 다시 가서 주차한 후 셔틀을 타고 오기로요. 쨈은 산을 내려갈 때도 혼자 앞질러 내려가서 셔틀을 타고 주차되어 있는 마을까지 이동한 후, 다시 차를 가지고 우리를 태우러 와야 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원래는 Mangatepopo에서 차로 6km 더 진입해야 트랙이 시작되는데, 어제 사고가 나서 걸어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띠용....... 그 당시에는 6km가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몰라서 슬슬 걸어가고 있었는데, 봉고가 지나가면서 어차피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나이스!! 우리가 처음 차에 오른 사람들이었는데, 차가 꽉 차서 바닥에까지 사람을 앉히고 더 이상 못 태울 때까지 사람을 태웠습니다. 그 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가서 내려준 후 다시 Tongariro expeditions 셔틀이 저희를 픽업해 줬습니다. 운전해서 들어가는 길을 보니까 길이가 어마어마하던데 걸어갔으면 시작도 전에 힘이 다  빠졌을 것 같습니다. 운 좋게 픽업돼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ㅠㅠ

 

초반부는 평탄하고 걷기도 편하게 길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중간에 Soda Springs에 들러서 폭포도 봤습니다. 그런데 이 때부터 날이 흐려져서 산 위에 올라갔을 때 풍경이 잘 안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됐습니다. 폭포 이후로 산에 경사가 좀 있어서 계단과 경사로를 헉헉거리면서 올라갔는데, 가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이 영혼 탈출한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때까지도 이미 헉헉거렸는데, 표지판에 지금까진 쉬웠고 이제 정말 어려울 거라고 적혀있더군요... 더 올라가다 보니 초원같이 아주 넓은 평탄한 평지가 나왔는데 산 위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안개가 워낙 심해서 주변에 산이 전혀 안 보이고, 사람들도 좀비 영화처럼 실루엣만 보였습니다.

 

평지를 걷고 있는 동안 쨈이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세 시간 동안 올라온 곳을 한시간 반 만에 올라왔네요. 어제의 그 사고 처리 때문에 쨈 셔틀 시간이 원래 예약했던 8시에서 9시로 밀린 건데도 이렇게 빨리 따라잡다니..... 기본 체력이 정말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쨈은 예전에 다른 친구랑 통가리로 트레킹을 했었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색이 거의 안 보이지만 원래는 평원이 노란색이라고 말해 줬습니다.

다시 등장한 오르막길은 경사가 좀 있는 돌길이라 밟은 자리의 자갈들이 뒤로 밀리는 바람에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구간만 올라가면 Red crater가 나온대서 힘내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 레드 크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정말 웅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안개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는데, 바람이 불고 순식간에 안개가 사라지니 선명한 까만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있는 구덩이가 보였습니다. 가이드 같아 보이는 사람이 설명하는 걸 어깨너머로 들었는데 이 크레이터는 비교적 최근에 생성된 거라 아직 작고 붉은색이라고 했습니다. 제일 높은 지점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내리막길도 올라가는 길만큼 경사가 급해서 딛는 데마다 바닥이 미끄러져서 조심조심 내려가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본 블로그 글에서는 죽음의 공포랬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런가 봅니다. 원래 통가리로가 바람 때문에 입산거부 되기도 하고 사람이 서있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기도 한다던데 저희가 간 날은 바람이 정말 안 불어서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대망의 Emerald lakes가 있는데, 구름이 껴서 하나도 안보이다가 마법같이 구름이 걷히면서 저 멀리 있는 blue lake까지 한 번에 쫙 보이는 타이밍이 있었습니다. 물 색깔이 너무너무 경이로웠습니다. 산 위에 저런 색깔 호수라니...... 흐린 날인데도 색깔이 너무 예뻤는데 햇빛이 들면 진짜 예뻤을 것 같습니다. 가까이 내려가서 호수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후로 내리막이었다가 다시 좀 더 올라가서 블루레이크에 도착하니 저 멀리 레드 크레이터가 보이고 눈 쌓인 언덕들과 평지같은 곳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블루레이크는 저 높이에서 봤을 때 너무 높은 곳에 물이 아주 넓게 고여 있어서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봐도 진짜 컸습니다. 에메랄드 레이크는 진짜 녹색이었는데 블루 레이크는 그냥 물 색이었습니다.

블루레이크 지나서는 쨈이 셔틀을 타고 차를 가지고 오기 위해 먼저 내려갔습니다. 거기서부턴 쭉 내리막 길이었는데, 통가리로 산행이 잔뜩 우려했던 것보다는 쉬워서 꽤 괜찮은데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오산이었음을 곧 깨달았습니다..... 내려가는 길 풍경은 Rotoaira 호수도 보이고, 이곳저곳 땅에서 김도 올라오고, 저 멀리 Taupo 호수가 바다처럼 보이고, 내려가는 길이 굽이굽이 보여서 장관이었습니다. 뷰가 좋아서 그래도 괜찮았지만 정말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현정이랑 승미는 슉슉 잘도 내려가서 저와 현주랑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친구들이 트레킹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제가 그 친구들 걱정할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화장실에서 만나서 그때부턴 같이 내려갔는데 맨 마지막 구간은 숲 길이었습니다. 하나의 코스에 이렇게 다양한 지형적, 생물학적 특성이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끝 포인트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아직 우리 차가 안 보였는데, 문제는 통화권 이탈 지역이라 쨈한테 연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메인 도로까지 아침에 픽업된 구간 만큼이나 길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슬슬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려고 할 때쯤 쨈이 도착해서 다 같이 물개박수를 쳤습니다. 이렇게 기쁠 수가!!!

통가리로 보통사람이 8시간 걸리면 우린 10시간 걸린다고 제가 누누이 쨈한테 얘기했는데, 쨈은 쉬면서 천천히 해도 8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정말로 10시간 걸렸고 4만보 걸었습니다. 날씨 때문에 통가리로 트레킹을 못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해서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다는데, 저희는 계획된 날짜에 딱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 맞춤형 날씨였던 게, 전체적으로 날이 흐려서 오히려 햇빛이 쨍쨍한 것보다 산 타기가 훨씬 수월했고 (물론 날이 좋았으면 사진은 더 예뻤겠지만)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걷혀서 중요한 건 모두 볼 수 있었으며, 바람이 없어서 심한 경사로 위험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고, 시작과 끝은 맑았다는 점입니다.

로토루아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정말 큰 무지개를 발견했는데 우리의 완주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부상 없이 트래킹을 잘 마쳐서 대견했습니다. 뒷자리 세 명은 차 타고 바로 골아떨어졌고, 저는 조수석에서 의리를 지키려다 도착 삼십 분을 남기고 기절했습니다.

 

YHA에 짐만 풀고 나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Polynesian spa에 갔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하루 ㅋㅋㅋㅋ 근육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등산 후 온천이었는데, 노천탕엔 비가 와서 눈은 뜨기 어려웠지만 운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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