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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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착기

180927 | 인생의 불안정한 시기 흘러가는 대로 살자

치치댁 2023. 11. 2. 08:48

(NZ+267) 목요일. 맑음

  • 집도 회사도 문제
  • 힘든 것에 내성이 부족한 나
  • 조금 더 되는대로 살자 다짐

지금 내외적으로 아주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집도 회사도 문제가 많다. 누구의 인생에나 사연은 있기 마련이지만 구구절절 쓰기도 애매할 만큼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멘탈 탈탈인데, 다른 사람들이랑 통화하다 보니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은 상황 같기도 하다.

나는 곱게도 자랐다. 여기 와서 내 뜻대로 인생이 살아지질 않으니까 더 그랬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힘들지 않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크게 실패해 본 적이 전혀 없는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나는 왜인지 항상 힘들었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그리고 지금 뉴질랜드에서도 물론 힘들다. 아주 힘든 상황을 겪어본 사람은 사소한 고난쯤은 대수롭지 않게 느끼게 된다는데, 어쩌면 진짜 힘들어본 적이 없어서 항상 힘든 걸지도 모르겠다.

통화 중에 엄마는 나에게 감정에 매몰되지 말라고 했다. 이 길로 갔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거고,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면 되는 거라고. 어차피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기에 '그냥 좀 특이한 상황이네.'라고 단순히 생각하라고 했다. 어떻게 살지 걱정이 태산 같은 나에게 사실은 감사해야 할 정도로 선택지가 아주 많다. 도와줄 사람도 많고 당장 뭐가 안된다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 같은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다. 사람은 참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엄마는 나보고 더 행복하려고 뉴질랜드에 간 것 아니냐고 했다. 맞아 그렇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아서 뉴질랜드는 초반에 좀 견디면 이후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거였다. 1년도 안 됐는데 참 참을성이 없다. 여기저기 악악거리고 있다. 악악거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거지 같아!"라고 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별 일 아니네(실제로 이렇게 들음) 싶은 시기다. 불안정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걱정, 잘 살고 있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회의가 버무려져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거지 같은 시기가 나한테 필요하니까 왔다는 거다. 기본적으로는 편하게 살고 싶은데 거지 같은 상황에도 연연하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잘 배울 수만 있다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생기니까 오히려 과거에 내가 불평하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삶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추억 필터의 영향도 있겠지만.

엄마가 그냥 한국 올 생각은 없냐고 물어봤는데 아직은 해볼 데까지 다 해보지는 못했다. 애매하다. 끝까지 가서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까지 가보거나, 더 좋은 건 잘 풀리는 거겠지. 시작한 이상 끝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겠다.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을 정해놓고 그대로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건데, 이 시점에서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장땡이지!' 정도려나. 어떻게 살아도 살아지긴 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은 단순하게 하자. '특이한 상황이네. 이번엔 이렇게 해봐야지. 아니면 말고. 저렇게 해봤다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르게 해보면 되고.'

살면 살수록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많이 없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우연히 얻게 된다고 하니 더더욱 되는대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아무리 막 살아도 막장으론 못 살아서 좀 막 살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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