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댁 뉴질랜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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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착기

181026 | 세은이 손편지, 현지 회사 구직, 인생 연습

치치댁 2023. 11. 14. 12:53

(NZ+296) 금요일. 맑음

  • 세은이 편지
  • 100군데 넘게 지원, 키위 회사 한 군데 더 인터뷰
  • 룸메와 대화
  • 인생 연습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드디어 세은이가 보낸 편지가 와 있었다. 이제 나한테 편지 보냈다고 연락한 사람들 거는 다 온 듯하다. 나를 대신해서 뽑아준 청년성경모임 말씀사탕과 소화데레사 스티커도 있었다. 편지는 언제 누구에게 받든 늘 특별하지만 외국에서 받는 편지는 좀 더 특별한 것 같다.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다 살 수 있다고 편지나 보내달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로 필요한 게 없기도 하거니와(이미 짐도 너무나 많다) 더 필요한 것은 나를 기억해 주는 마음인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지구 반대편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뭘 하며 지내는지 생생히 볼 수 있고 손쉽게 연락할 수도 있지만 손편지에는 디지털 텍스트로 전할 수 없는 또 다른 정서가 있다. 즉각적으로 답이 오가지 않는 데서 오는 한 호흡 쉬어가는 느림의 미학이랄까.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 무엇을 종이에 적어 내려가는 정성된 시간과 어떤 말을 어떤 마음으로 적을까 하는 고민, 편지를 받을 상대방의 기분에 대한 궁금증,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설렘이 더해져 편지는 특별한 것이 된다.

'카톡으로도 꽤 자주 연락해서 특별히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으로 시작된 편지는 두 장이 꼬박 채워져 있었다. 나도 받은 편지들에 답장을 해야 하는데 후딱 써서 보내면 될 것 같으면서도 그 잠깐의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게 어려운 걸 아니까 편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편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나 보다.

 

지원했던 곳 중 한 군데서 연락이 와서 잠깐 얘기를 좀 하자고 해서 가서 얘기를 나누고 왔다. 여기는 꼭 인터뷰가 아니라 얘기를 하자고 하더라... 스크리닝 하려는 목적이긴 하겠지만. 이번주를 기점으로 지원한 곳이 백 군데가 넘는데도 지금까지 연락 온 데는 정말 몇 군데 안 된다. 그마저도 연락하다가 중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엔 좀 잘됐으면 좋겠다 제발! 상품 디스플레이하는 목업같은 걸 만드는 곳이었는데 자체적으로 인쇄소를 가지고 있고 일도 재밌을 것 같다. 이런거 진짜 관심 있고 하고 싶다고 얘기하긴 했는데... 나랑 얘기한 사람은 디자이너여서 어떤 프로세스로 일이 진행되는지 말해주고 인쇄소를 구경시켜줬는데 오랜만에 인쇄소 냄새... 본드 냄새가 반가웠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재미는 있었다.

지금 단기로 룸셰어를 하는 룸메이트는 나보다 세 살 언니인데 좋은 사람이고 잘 맞는 것 같다. 저녁마다 폭풍수다를 떤다. 룸메 바뀔 때마다 항상 걱정하는데 하나같이 잘 만나게 되네. 이상한 사람도 많다는데 역시 나의 인복에 감사하다. 룸메 언니가 오늘 자기도 면접 두 개 봤는데 한인잡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다 잘됐다면서 나도 잘될거라고 얘기해줬다.

이제 정말 좀 잘 됐으면 좋겠다. 다만 언제가 맞는 때일지, 어디가 나에게 가장 좋은 곳일지 어차피 나는 알 수가 없으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연습 중이다. 여기서 너무 안 풀리는 게(온 지 일년도 안 되긴 했지만) 미쳐버릴 것 같고 내 맘대로 안되는 게 성질났는데 요즘엔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이 좀 평온해졌다. 상황은 여전히 같지만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야 된다는 법도 없고 이런 날들이 지나면 언젠가 뭐라도 되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안되면 또 어떠냐고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엄마가 잘 안되면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으니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는데 돌아갈 데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앞이 안보이고 막막한 시간들도 결코 즐겁진 않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물론 인간적인 욕심으론 이 시간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취업 준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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