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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1 | 보영언니 친구 디자이너분과 만남, 떠날 준비 겸 회고 본문

뉴질랜드 정착기

181111 | 보영언니 친구 디자이너분과 만남, 떠날 준비 겸 회고

치치댁 2023. 12. 4. 10:47

(NZ+312) 일요일. 흐리고 비

오늘 낮에 보영언니가 아는 디자이너 친구분이랑 마운트이든 쪽에 있는 Frasers라는 카페에서 만났다. 우주는 볼 때마다 점점 귀여워진다. 되게 얌전한데 잘 웃고 와서 안기고 쫑알쫑알 말도 잘한다. "저기엔 누구 앉을 거예요?"같은 그런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게 신기했다. 애들 구경하는 건 좋지만 아기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도 우주를 보고 있으면 저런 아기라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사랑스럽다.

 

친구분이 곧 도착하셔서 같이 얘기를 나눴다.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는 좋은데 여기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도 디자인 업계 취업하는데 공백이 꽤 길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은근히 취업난이 심한가 보다. 하기야 여기도 디자인과 졸업생들이 있고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으니까 당연히 취업하기 힘들긴 하겠지... 그래도 가끔이라도 회사들에서 연락 오는 건 희망적이어 보인다고 왕가레이 회사 느낌이 좋다면서 가서 잘 만나보라고 하셨다. 다른데도 계속 지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 회사가 올해의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잘 됐으면 좋겠다 정말로. 여기 사람들은 무조건 자신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영어가 안 돼도 그냥 자신감 있게 얘기하라고 하셨다. 한국처럼 눈치 보면서 맞춰주거나 너무 격식 갖추지 말라고, 친구같이 대하고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나누고 내가 할 말 다 하고 오라고 조언해 주셨다.

개인적인 계획으로는 이번 달 말쯤 어디로든 거처를 옮겨볼까 생각 중이어서(그게 왕가레이면 제일 좋겠다) 만나는 사람들한테 조금씩 운을 띄우거나 인사를 하고 있다. 오늘 성가대가 있는 날이었는데 이번 달은 첫째 둘째주 말고도 내내 우리가 할거라길래 더 있다가 얘기해야지 싶었는데, 원래 하던 다른 성가대가 이번 달까지는 할 수 있대서 오늘이 이번 달 마지막 성가대였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오늘이 내 마지막 성가대 활동이 되었는데 급 아쉬웠다... 우연하게도 오늘 복음환호송 하기로 한 사람이 못 와서 갑자기 내가 선창을 하게 됐다. 그 덕에 마지막 성가대에서 알렐루야를 불렀다. 처음 솔로 배정됐을 때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성가대를 그만두고 싶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으로 성가대석에서 드리는 미사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묘했다. 미사 끝나고 신부님께도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아쉬워하셨다. 필리핀 신부님인데 나한테 관심도 많이 가져 주시고 한국 드라마 재밌다면서 말 걸어 주고 그러셨는데. 다음주 화요일에 인터뷰가 있다고 기도해 달라고 하니까 같이 있던 성가대 사람들이랑 다같이 기도하고 강복해 주셨다.

Lucy 생일이랑 내 farewell 겸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Melita가 식사 전 기도를 하면서 또 내 기도를 해줘서 고마웠다. 하도 기도해 달라고 떠벌리고 다녀서 기도 많이 받을 것 같다. 내일도 성당 다른 모임 나가는데 또 부탁해야지. 기도빨로 합격했으면... Joanna는 내가 잘되길 기도하겠다고, 그런데 만약 합격하지 못해도 다른곳에 다른 뜻이 있는 걸테니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며칠 전에는 좀 들떠 있었는데 요새는 다시 마음이 차분하다. 되려면 될 것이고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면 안되겠지. 진짜로 떠나게 되면 그 전에 한 번 더 모이자고 하고 헤어졌다.

 

평소에는 지금까지 이룬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조급해하며 사는데 이렇게 한번씩 찾아오는 큰 변화의 시점에 돌아보면 생각보다 꽤 여러 가지를 성취했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 떠나면서 정리할 때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선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는데 지금도 그렇다. 오클랜드에서 인사할 사람들을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경로로 여러 좋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성가대도 했고, 영어 점수도 만들었고, 학교도 입학해 뒀고, 카페에서 일도 해봤고, 결과와 상관 없이 회사도 다녔네. 떠난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아쉬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인 걸 보면 결국 사람인가보다. 여기서도 인복이 좋아 사람들을 잘 만났다. 왜 그럴까 싶게 나한테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 귀여워해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만남을 통해서 배우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라고 과분하게 좋은 사람들을 자꾸 만나게 해 주시나 보다. 스트레스 면역이 거의 없어서 혼자 맨날 죽겠네 힘드네 어쩌네 하면서도 사실은 사람 잘 만나는 덕으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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